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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가 어떻게 나에게 왔는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입력 2019.11.07 08:32 수정 2019.11.08 08:32

김영식 시인, 수필가

ⓒ 경북연합일보
'시(詩)는 미메시스(모방)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詩學>에서

 처음 나는, 조각가가 조각하듯 시(詩)가 만들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브랑쿠시의 <잠자는 뮤즈>처럼. 여기저기 시가 될 만한 사물을 찾아다녔다. 꽃, 나무, 새, 강과 산, 구름, 바다를 주유했다. 적당한 재료를 가져와 그것들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형상화를 시켰다. 새로운 인식, 낯설게 하기에선 칼날에 자주 손이 베였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시는 접시(接詩)다 라는 느낌이 들었다. 무녀가 신 내림을 받듯 알지 못하는 어떤 계시에 의해 글이 내 안으로 온다고 정의를 세웠다. 시를 빙의하거나 엑스터시 하기 위해선 정신을 정갈하게 해야 했다. 밤에 잠을 자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문장을 받아 적었다. 그런 후엔 며칠 신열을 앓았다.
 다시 수년의 세월이 흘러 새로운 생각이 왔다. 시는 조각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내림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태초부터 존재해 있었다는.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나 곽재구의 <사평역>에서는 우주 어딘가에 이미 완성된 작품으로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시인은 그걸 찾아내는 발견자가 아닐까. <발견자>로서의 역할은 베르베르도 이미 얘길 했던 것이지만 그것보다는 훨씬 더 구체적이었다. 그러니까 시인은 혜안을 가지고 있어야하며 유물을 발견하는 역사학자처럼 시를 발굴하는 것이라고. 우주 한켠에 묻혀있는 문장을 만나려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많아졌다. 문학에 대해 조금씩 겸손해지기시작한 것도 이때쯤이었다.
   그 후론 시에 대한 어떤 깨우침도 오지 않았다. 가끔씩 시는 조각하는 것과 접시라는 것과 발견자로서의 세 가지가 종합적으로 이루어질 때 만들어지는 것일 수 있다는 정도까지는 나아갔지만 그건 차라리 궁색한 것이었다. 어쩌면 나의 시론은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염려가 자주 찾아왔다.
 또 몇 년의 시간이 지났다. 시론은 어느 정도 굳어져 갔다. 어쩌면 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은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어느 날 네 번째 깨우침이 왔다. 시를 쓴다는 건 신(神)이 감추어둔 사물의 원래 이름을 찾아내는 것이라는.
 신은 대체로 불친절해서 사물의 본래명칭을 감추어놓은 채 다른 걸로 눈속임을 해놓았다. 왜냐면 인간이 감히 신의 자리를 넘보지 못하게 하려고. 이를테면 사과는 '붉은 사슴의 눈동자를 닮은 노을빛 열매' 이었는지 모른다. 곤줄박이는 '검고 노란색 반점이 있는 점을 치는 청회색 깃털을 가진 날 것'인지도. 그러고 보니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시인이 가난한 이유는 자꾸만 신의 영역을 침범하기 때문이라는.
 네 번째 생각 이후로 또 다시 다음 깨우침이 올진 알 수 없는 일이다. 여기까지가 내 시론의 마지막 정의일지 모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바탕으로 나는 한 줄, 한 줄 시를 완성해왔다는 것이다. 조각하는 것처럼, 시 내림을 받아서, 우주의 궁륭을 파헤치며, 어떨 땐 신이 감추어놓은 원래의 이름을 찾아내기도 하면서.
 그러니 한 편의 시가 어떻게 내게 왔느냐고 물으면 나는 아득해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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