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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형대 |
| ⓒ 경북연합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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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에서 정(正)은 ‘칠’ 정(征)에서 유래된 것으로 정복자들의 공물 징수를 정당화한다는 정(政)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의(義)의 개념은 옳음과 그름의 의미로 사용되나 실제는 제물을 바치는 제례의식을 의미하였다.
이렇게 볼 때 정의에서 정(正)의 어원적 의미는 전쟁의 결과 정복지에서 공물을 거두어들임에 있어서의 균등의 뜻으로 법, 규정, 규칙 등의 형태로 나타나서 타율적 규율로 정치적 정당성의 준거가 되었다.
그리고 의(義)는 행하는 자의 의지에 의한 자율적 규율로 절제, 관습, 도덕 등의 윤리적 정당성의 준거가 된다. 그래서 정의는 자율적인 행위가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한 상태로써 그 과정과 결과는 타율에 의해서 평가되어지고 있다.
서양에서의 정의(正義)는 신에 의한 절대적인 기준으로 여겨졌다. 그리스의 서사시인 헤시오도스는 제우스에 의해 관장되는 절대적 정의를 인용하여 정의로운 생활을 강조한 바 있다.
그 후 플라톤이 정의에 대한 구체적 탐구를 하면서 국가의 정의란 ‘지배자, 군인, 일반시민이 각각의 업무에 힘쓰고, 이러한 상태에서 지혜와 용기 그리고 절제가 실현된 조화로운 상태’라 주장하면서 왕권국가에서의 충성을 바탕으로 한 각자 개인성의 조화에 의한 균형적 정의를 주장하였다.
플라톤의 제자이자 논리학의 창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국가 아래에서 인간들의 유대이다’라고 하면서 사회적 공통의 선(善)과 균형을 중요시하였다.
이러한 그리스시대의 사상적 정의는 로마시대에 들어가서 성문법에 의한 정의로 나타나는데, 이런 결과물로 시민법과 만민법이 생겼고,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시대에 로마법 법전 탄생의 모태가 되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오늘날 유럽 각국의 법전이 탄생되었다.
정의는 신권시대의 절대적 정의에서 왕권시대의 충성적 정의를 거쳐 민주국가에서의 시민에 의한 사회적 정의의 시대까지 변하여왔다.
이 모든 과정에서 시대적으로 요구된 정의는 사회유지 도구의 특성만큼이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였다. 그래도 어느 시대나 균형과 균등이란 근본 개념을 가지고 있으면서 최고의 선(善)으로 자리매김하였음은 분명하다.
이러한 정의의 집행은 위정자나 법관 등 특정인이나 특정계층에게 위임되어 실현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렇게 위임받은 집행자들은 권한을 무모하게 집행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왜곡과 망각의 늪 속에서 사리사욕에 눈이 먼 이들을 누군가는 감시하고 바르게 고치게 하여야 한다.
이러한 훈도자 내지는 징벌자의 역할을 시민 모두가 하여야 한다. 시민이 올바른 교정자 역할을 수행한다면 정의는 바르게 실현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의가 일상화된 사회문화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을 올바른 교정자로 이끄는 선도자의 역할은 언론이 많은 부분을 담당할 수 있다. 이러한 선도자 내지는 안내자의 역할의 수행은 정필의 실천에서 출발한다.
언론인이 정의에 대한 균형 잡힌 인식과 자세로 본분을 다할 때 시민들의 선도자 혹은 안내자로서의 역할 수행이 가능해진다.
언론은 정필로 시민들에게 동기를 심어주고 시민들은 언론이 제공하는 정론으로 무장하여 권력자를 훈도한다면, 사회는 한층 밝아질 뿐 아니라 지속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
‘로마가 무너진 것은 로마가 정의를 상실했을 때이다.’ 로마의 위대한 공화주의 사상가 키케로의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최형대 사회복지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