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후 줄곧 실용주의 정책, 실용외교를 강조해 왔다. 미국과의 상호 관세협상도 마찬가지다. 기준도 구체적인 내용도 모호한 ‘실용’ 원칙 때문에 한미 간 관세협상이 교착상태이다 보니 철강업계와 자동차업계가 미국의 높은 관세 장벽으로 울상을 짓고 있다.
대통령실은 지난 16일 한미 관세협상과 관련해 “시한에 쫓겨 기업들이 크게 손해 볼 일은 대통령이 사인(서명)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미 간 협상이 교착상태인 상황에서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기업이 미국에 가서 돈을 벌어야지, 미국에 돈을 퍼주러 갈 순 없다”며 “정부가 기업에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해줘라’라고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 대통령의 확고한 생각”이라고 했다. 즉 ‘시간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이 이 대통령의 의지라는 말이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관세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제안한 3500억 달러(약 486조 원) 규모의 대미투자를 현금 출자 방식으로 진행할 것을 요구하면서 대미 투자에 따른 수익 배분 또한 일본과 유사한 수준으로 합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앞서 일본은 대미 투자에서 발생하는 이익 배분과 관련해 투자금 회수 전에는 미국과 50대 50으로 나눠 갖고, 투자금 회수가 완료되면 미국이 90%, 일본이 10%를 배분받는다는 미국의 입장을 전면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 같은 미국 측의 요구에 ‘수용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협상 과정에서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다면 25% 상호관세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관세협상과 관련해 “어떠한 이면합의도 하지 않고 국익에 반하는 결정은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통령실의 강경 기조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대규모 직접 투자 요구에 맞서 한국 정부가 통화스와프를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며, ‘시한 없는 장기전’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 면담을 진행했다. 면담 직후에는 구윤철 부총리도 연이어 베선트 장관과 회동하고 통화스와프 문제를 공식 논의했다. 이 대통령은 면담에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와 관련해 ‘상업적 합리성’을 거듭 강조했다.
아무튼,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냉각기를 가질 예정이어서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가 관세 협상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국익 최우선’과 ‘상호호혜적’ 원칙하에 한미 정상이 어떤 식으로든 만날 것으로 예상되는 ‘APEC 정상회의’ 때 협상 타결을 목표로 양측의 이견차를 좁혀나갈 계획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권과 경제계에서는 대통령실의 ‘국익 사수’ 의지가 정말 국익을 위한 것인지 우려가 크다. 한국이 미국과 관세협상에서 장기전을 벌이는 사이 한국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미국의 관세는 6월 4일부터 기존 25%에서 50%로 인상되어, 한국 철강업계는 수출 경쟁력 약화와 수익성 악화에 직면하게 됐다. 한국은 대미 철강 수출 4위 국가로, 전체 철강 수출의 약 13%가 미국 시장에 해당한다.
게다가 미국 상무부는 16일부터 일본 車 관세를 15%로 인하했고, 25일에는 유럽산 자동차와 차 부품에 부과 중인 품목별 관세 25%를 15%로 인하하면서 지난 8월 1일부터 소급 적용한다고 밝혔는데 한국 車는 여전히 25% 관세를 부과 중이어서 우리 자동차의 미국 수출에 큰 타격과 함께 수익성 악화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이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어떤 외교가, 어떤 식의 협상이 진정으로 국익을 위하는 것인지 심사숙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