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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연합일보 |
오늘의 사회의 개별자는 아상에 사로잡혀 자기주장만 하고, 자기 욕심만 채우려는 집착으로 말미암아 투쟁과 갈등, 경쟁이 일어나게 된다.
인간과 사물, 자연과의 관계에는 환경파괴와 훼손으로 결국 서로가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서로 융섭해야 한다.
상호 의존관계에 있는 진리의 세계이므로,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는 것이며, 어느 것 하나 진리 아닌 것이 없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한 순간의 마음속에 일체가 있고, 하나의 먼지 속에도 일체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큰 생명에서 나온 존재들이며, 남이란 또 다른 나이다.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한 삶이야말로 함께하는 공동체적 삶의 진수다.
남이란 크게 보면 또 다른 나이다.
때문에 위 글에서 ‘즉(卽)’은 긍정의 시(是)이자, 양변을 여읜 중도이다.
일미진중 함시방(一微塵中 含十方)
이는 『화엄경』의 주요명제인 ‘하나는 전체이고 전체는 하나(一卽多 多卽一)’라고 하는 말을 원용해 우주만유를 일대연기(一帶緣起)로 보고 있는 데에서 나온 말이다 즉, 이 세상에 나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과 더불어 존재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나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나 하나라는 말로서 화엄교학의 근본이념인 법계연기를 나타낸다.
그리고 이 글의 주제 ‘일미진중함시방’은 작은 하나의 티끌(먼지) 속에 시방세계가 다 들어 포함돼 있고, 또한 어느 특정한 티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티끌(모든 사물) 하나하나에도 똑 같이 그렇게 돼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아주 작다고 해서 무시할 것이 아니다.
그 작은 티끌 속에 온 우주가 다 포함돼 있다.
그리고 낱낱의 티끌, 낱낱의 사상(四象)들이 모두 그러하다.
그리고 낱낱 그 하나하나의 속이 다 충만 돼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작은 티끌 하나 속에 주의 비밀이 다 숨겨져 있고, 티끌 하나를 세밀히 분석하면 그 속에서 우주의 진실을 다 케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함시방에서 ‘시방’은 동·서·남·북 4방에, 북동·동남·남서·북서의 4방을 더하고, 거기에 상·하를 합하면 시방이 되는데, 곧 세상천지, 우주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리하여 작은 티끌 하나에도 시방세계(우주)가 다 펼쳐져 있고, 모든 티끌마다 우주가 다 들어있다는 뜻인데, 이는 시방세계의 티끌 속에도 또 다른 시방세계인 무한한 우주가 펼쳐 있으므로, 이렇게 이어지는 우주는 무한해서 끝이 없다는 말이다.
‘일미진중 함시방’은 넓고 좁음(廣狹)이나, 크고 작음(大小), 많고 적음(多少), 길고 짧음(長短) 등이 서로 걸림 없는 경계이다.
작은 티끌과 시방세계를 비교를 해서, 티끌은 작고 시방세계는 크다고 할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과학의 소립자 세계에서도 이 사실이 그대로 성립되고 있다.
물리학의 발달로 인해 미세한 물질을 깊이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신비스러운 성질이 밝혀지고 있고, 특히 소립자는 끊임없이 변하여 유동적이라는 성질과, 한 개의 소립자의 존재는 다른 소립자와의 관계에서 성립된다는 성질이 밝혀지고 있다.
그리고 근대과학은 생명의 가장 작은 단위로서 세포를 생각했었다.
그러나 한 세포 속에 그것을 형성하는 보다 작은 단위가 있고, 그들은 나름대로 다른 모두와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세포 분열은 한 개의 모세포가 2개의 딸세포로 나누어지는 현상으로, 먼저 핵이 나누어지는 핵분열을 한 후 세포질이 나누어지는 세포질 분열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세포가 분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갓 태어난 아기는 몸무게가 약 3~3.5kg 정도이지만 성인이 되면 아기 몸무게의 15배에서 20배 이상으로 늘어나고 키도 커지게 된다.
이렇게 성장할 수 있는 이유는 세포의 크기가 커져서일까?
아기는 정자와 난자가 합쳐져 만들어진 수정란이라는 한 개의 세포에서 출발해 약 3조 개의 세포로 구성된 모습으로 태어난 후, 약 6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성인으로 자라난다.
즉 세포가 분열하여 그 수가 늘어나야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세포는 어느 한계 이상으로 커지면 세포 내부와 외부의 물질 교환이 원활하지 못하고 핵이 세포를 통제하기 어려워지므로, 일정 수준 이상으로 커지면 더 이상 커지지 않고 2개의 세포로 나누어지는 세포 분열 과정이 일어난다.
세포 분열은 세포가 분열할 때 나타나는 방추사 의 유무에 따라 무사 분열과 유사 분열로 나누어지며, 유사 분열은 다시 염색체 수의 변화에 따라 체세포 분열과 감수 분열로 나누어진다.
그래서 불교적인 인간관은 ‘일미진중 함시방’인 동시에 ‘일즉다 다즉일’이라고 한다.
단순히 개인이 모여서 사회를 형성하는 것만은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사회(전체)를 표현하고 있다.
마치 한 개의 소립자가 다수의 소립자를 구현하고 있는가 하면, 한 개의 소립자는 그 다수의 소립자에 의해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즉 ‘일미진중 함시방’이면서 ‘일즉다 다즉일’로서, 이는 「대승기신론」의 일심(一心) 사상과 맥을 같이 한다.
삼라만상은 존재론적으로 완전하게 평등해서 서로 주고받는 상융작용을 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러니 제법은 중중무진으로 서로 의지해 존재하는 중도연기의 세계이며, 화엄의 무애법계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하여 불교에서는 한순간의 마음속에 일체가 있고, 하나의 먼지 속에도 일체가 있다고 말한다. (끝)